많은 사람이 은퇴 후 삶을 막연히 꿈꾸지만, 정작 그 삶의 방향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35년간 직장 생활을 마치고 서울을 떠나 충북의 작은 마을로 귀촌을 결심했다. 도시에서의 일상은 익숙했지만, 동시에 내 삶의 의미를 점차 잃어가고 있었기에 용기를 냈다. 귀촌은 단순한 환경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패턴을 재구성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었다. 자연과 가까워지고 이웃과 대화를 나누며, 작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을 하나씩 발견하게 되었다. 이 글은 한 은퇴자가 귀촌 이후 겪은 진솔한 변화와 작은 기쁨들이 어떻게 삶의 목적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막연한 귀촌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용기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심에서의 삶, 점점 작아지는 나
퇴직 전의 나는 매일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시간에 출근해 같은 회의에 참석하며 하루를 소진했다. 안정적인 수입과 체계적인 구조는 외적으로 보기에 나쁘지 않았지만, 내면에서는 공허함이 점점 커졌다. 일이 곧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상태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점차 줄어들었고, 가족과의 대화도 사무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퇴근 후 TV를 보며 시간을 때우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취미는 형식적으로만 남아있었다.
그런 나에게 은퇴는 일종의 강제적인 쉼표였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을 여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퇴직을 하고 나니, 하루하루가 너무도 길었다. 계획했던 여행도 한두 번이 지나고 나면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시간은 많아졌지만, 삶의 방향과 의미는 사라졌다는 사실을. 도시에서는 더 이상 나다운 삶을 찾을 수 없다고 느꼈다. 그렇게 나는 귀촌이라는 선택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귀촌을 결심하게 된 계기, 자연이 준 위로
은퇴 후 몇 달 동안은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늘 차로만 지나쳤던 한 시골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다. 거기서 만난 풍경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끝없이 펼쳐진 논밭, 천천히 걸어가는 마을 어르신들, 그리고 한적한 산길의 바람 소리. 그 순간, 도시에서 잃어버렸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자연은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 조용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귀촌은 단순히 시골로 이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면을 정돈하고, 삶을 천천히 다시 바라보는 선택이었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충북 단양 근처에 소형 주택을 마련했다. 땅값은 생각보다 저렴했고, 마을 분들도 새로 들어온 우리 부부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까지 하냐’며 의아해했지만, 우리에겐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더 이상 소비와 성과 중심의 삶이 아닌, 본연의 감정을 되살리는 환경에서 살고 싶었던 것이다.
삶의 패턴을 재구성하며 찾은 소확행
귀촌 후 가장 먼저 바뀐 것은 아침이었다. 해가 뜨면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고, 창문을 열면 서늘한 공기와 새소리가 반겨주었다. 나는 매일 새벽, 근처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도시에서라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상이었다. 밭농사를 배우기 시작했고, 계절마다 다른 작물을 직접 키우며 손으로 흙을 만지는 감촉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느낀 뿌듯함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종류의 만족이었다.
또한, 나는 매일 일기처럼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도시에서는 너무 바빠서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여기서는 매일의 작은 일이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마을회관에서 열린 막걸리 담그기 체험, 마당에 핀 들국화, 첫 수확한 고구마를 이웃과 나눈 이야기까지. 글을 쓰면서 나는 내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았다.
공동체 속에서 나를 다시 발견하다
귀촌 전에는 ‘이웃’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삶을 살았다. 아파트 복도에서 조우해도 인사를 나누지 않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골은 달랐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던 이웃들의 관심과 대화가, 점점 나에게는 따뜻한 연결 고리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논에 물 대는 순서를 정하고, 김장철에는 서로 돕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경험은 겨울철 연탄 나눔 행사였다. 마을 청년들과 함께 불우한 가정을 위한 연탄 배달을 하면서, 공동체가 가진 따뜻함과 나눔의 가치를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단순히 ‘은퇴자’가 아닌, 마을의 한 구성원으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이웃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와 함께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이, 도시에서 수십만 원짜리 외식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귀촌 후 삶의 목적을 다시 그리다
귀촌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예전보다 훨씬 적게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마음은 더 풍요롭다. 매일이 반복되는 듯하지만, 자연의 변화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작은 성취를 통해 의미를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다’는 감정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블로그 강의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봉사의 일환이었지만, 점차 나의 콘텐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글쓰기, 소소한 농사, 이웃과의 대화, 그리고 계절의 흐름을 느끼며 사는 이 일상이야말로 내가 진정 원하던 삶이었다. 은퇴는 끝이 아닌 시작이며, 귀촌은 도피가 아닌 전환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언젠가는 스스로의 삶을 다시 정의할 수 있는 그 순간을 맞이하길 바란다.
귀촌은 선택이 아닌 ‘내가 나를 존중하는 방식’이었다
도시에서의 삶은 늘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 나를 몰아넣었다. 직함, 성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하지만 귀촌 이후 나는 처음으로 ‘그냥 나로서 존재해도 괜찮은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누군가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삶. 그 자유는 생각보다 더 깊은 안정을 주었다.
요즘 나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생각하는 시간’으로 채운다. 해가 지기 전 마당에 앉아 차를 마시며, 오늘 하루 있었던 작은 일들을 떠올리고, 감사할 것들을 마음속으로 정리한다. 이 단순한 습관은 내 삶의 온도를 바꿔주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사치이자 축복인지 요즘 들어 더욱 실감하고 있다.
귀촌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낯선 환경, 새로운 인간관계, 생계에 대한 불안까지 여러 요소들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모든 불확실성을 견딘 보람을 몸소 느끼고 있다. 매일 아침 마당에 핀 작은 들꽃 한 송이, 이웃이 건네는 반찬 한 그릇,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 하나까지도 나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나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면서 ‘수용’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몸으로 배웠다. 비 오는 날은 비를 맞고, 더운 날은 더위를 견디며 사는 동안, 모든 상황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은 늘 통제할 수 없지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진리를 이제는 체득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변화는, 내 삶의 이야기를 듣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을 소식지에 기고를 하고, 귀촌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며 나는 또 다른 역할을 부여받았다. 이제는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길잡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삶의 또 다른 목적이 되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다. 귀촌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나를 다시 살리는 복원의 과정이었다고. 소박한 일상이 결국 가장 큰 기쁨이었음을 늦게라도 깨달을 수 있었던 그 시간들에 감사하며, 이 땅의 모든 은퇴자들이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망설이지 않기를 바란다. 소확행은 결국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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